
권준휘 안중한의원 진료원장
필자는 지난 5일·6일, 경북 영덕 산불 피해 지역 한의진료소 봉사에 참여했다. 영덕은 부친의 고향으로, 뉴스로 접했던 산불 피해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이런 가운데 경상북도한의사회의 요청에 따라 ㈔약침학회 굿닥터스나눔단이 의료봉사 일정을 조직하게 됐고, 필자 역시 현장에 함께하게 됐다.
자차로 서울에서 대전을 지나 영덕으로 향하던 길, 검게 그을린 산림을 지나며 실제 피해의 실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장거리 운전의 지루함은 어느새 긴장감으로 바뀌었고, 현장의 무게를 온전히 느꼈다.

진료 현장: 증상의 치료를 넘어, 삶의 이야기까지
첫날인 5일, 국립청소년해양센터 한의진료소를 중심으로 진료가 시작됐다, 한의진료소는 이재민들이 정기적으로 내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됐으며, 진료 공간은 굿닥터스나눔단이 전날 테이블과 베드를 분산 배치해 여러 한의사가 원활히 진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구축해 놓았다.
진료 초반에는 근골격계 통증, 불면·불안 등 신경계 증상을 호소하는 고령 환자들이 주를 이뤘다.
초기에는 통증 완화 중심의 처치가 주로 이뤄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료진은 환자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통과 불안을 깊이 인식하게 됐다.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옆집 젊은이가 문을 두드려 겨우 대피했다”,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이웃을 업고 함께 도망쳤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그 순간 환자들은 단순한 진료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재난을 겪은 생존자이자 고통 속에서도 견디고 있는 국민이라고 깨달았다. 아픈 부위를 짚어보고도 곧바로 침을 놓기보다는 몇 차례 더 그 주변을 부드럽게 주무르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어디가 아프세요?”, “여기도 불편하세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증상 확인이 아닌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방식이었다.
환자의 한마디, 한마디를 치료의 정보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알아줬으면’하는 마음으로 듣고, 되묻고, 되짚으며, 또 다른 불편한 곳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이후부터는 ‘경청’과 ‘위로’가 치료의 중심이 됐고, 등을 토닥이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건네는 진심 어린 말도 치료의 일부가 됐다.

재난 현장에서 빛난 통합한의진료(초음파 유도하 약침술·방문진료)
이번 봉사에서는 ㈜FCU의 휴대용 초음파 장비 Acuviz Pocket을 활용했다. 대형 모니터에 연결하자 영상을 통해 관절, 인대 등 연부조직에 대한 세밀한 확인이 가능했고, 초음파 유도하 약침술도 시행할 수 있었다.
이재민들은 침이 조직 내로 진입하고, 약침이 주입되며 근막이 벌어지는 장면을 직접 확인하며 진료에 신뢰감을 가지게 됐다.
PDRN 성분인 연아 약침과 어혈 약침, 통원 약침을 병용하였고, 타스컴의 혈액분석기를 통해 현장에서 당화혈색소, 간·신장기능, 염증 수치 등을 즉시 측정, 이는 이재민들의 만성질환 관리에도 큰 도움을 줬다.
이와 더불어 한의약은 방문진료와 응급의료 측면에서도 뚜렷한 강점을 보였다. 진료소까지 이동이 어려운 이재민들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진료를 별도로 구성해 운영함으로서 재난 상황 속에서도 끊김 없는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의진료의 ‘현장성’과 ‘공공성’을 다시한번 절감
영덕국민체육센터에서 진행된 둘째 날 진료는 임시 텐트에 거주 중인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이뤄졌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의사들은 단순히 증상 치료를 넘어 환자와의 정서적 교감에 집중하며 진료의 본질에 다가갔다.
트라우마 평가를 위한 심리 설문과 환자 맞춤형 처방 등,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한의학의 통합적 진료가 현장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공중보건한의사들의 참여는 주로 평일에 집중되었고, 주말에는 인력이 급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보건소는 공가를 허용하지 않아 사비와 연차를 사용하며 봉사에 참여한 한의사도 있었다.
마침 이날 현장에 방문한 국회의원에게 이러한 문제를 직접 전달할 수 있었고, 향후 재난 대응에서 한의사 인력이 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행정적·정책적 차원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될 수 있었다.

나눔단 활동을 통해 바라보게 된 의료인의 사명
한의사로서 많은 것을 느낀 경험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또다시 쳇바퀴 돌아가듯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 기록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때의 생각과 마음들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이 단순히 진료실에 국한되지 않으며, 지역사회와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진단기기와 한약 제형의 다양화, 초음파 활용, 약침 시술, 심리상담까지 한의약은 이러한 현장에서 진정한 융합의학이자 총체적 의료로 작동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나아가 한의약이 공공의료와 재난의료의 주요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이번 활동을 가능케 한 굿닥터스나눔단과 동료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우리 한의계가 국민 곁에서 진정한 위로와 회복의 힘이 되기를 기원한다.